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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철학가, 성우 구자형 동문 (철학 86)
작성자 홍보팀조회수 3234날짜 2018.05.25
파일 첨부 파일 1527229906784.jpg 

성우 구자형 동문 (철학 86)

[인터뷰 : 학생기자단 PRESSU(프레슈) 8기 홍주성(국어국문학과 13)]

기억은 시각보다 청각에 더 많이 의존한다고 한다. 사람은 눈을 통해 날마다 무수한 이미지와 영상을 접하지만 기억하는 장면은 몇 없을 것이고, 그마저도 결국 시간이 경과하면서 빠르게 잊혀간다. 반면 한번 들은 소리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고, 쉽게 상기된다. 이는 무수한 외화,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미디어 속에서 성우로 활약한 구자형 동문이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의 뇌리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근거다. 하지만 미디어에서의 '소리'가 이처럼 적잖은 영향력을 끼치는 만큼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는 법. 그러므로 조심스러운 태도로 녹음 작업에 임해야 하기 마련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직접 만난 구자형 동문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색하는 철학가와 흡사했다. 명실 공히 대한민국 성우계의 대가, 구자형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프로페셔널리즘을 지향하는 성우

구자형 동문을 수식할 수 있는 명칭들은 다양하다. ‘27년 차 베테랑 성우’, ‘북텔러’, ‘내레이터…….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프로페셔널로서의 평가를 중요시 하는 성우'로서 대중들에게 각인되기를 원했다.

"미디어에서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연기자’, ‘연예인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인기를 목표로 할 수 있는 직업이 성우입니다만 저는 성우 생활 중에 단 한 번도 그렇게 연예인으로 인정을 받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전문가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전문성을 인정받는 성우가 되고 싶었습니다. 성우계의 '장인', '마이스터'로 남고 싶었다고 생각하면 쉬울 거예요. 대중의 인지도에 따라 가치를 인정받는 게 아니라 이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음으로써 보람을 느끼는 삶 말이죠. 그 삶을 위해 이제껏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노력해나갈 것입니다."

그는 운전 면허증을 비유로 들며 그의 직업적 가치관을 드러냈다.

"운전 면허증을 따면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잖아요. 누군가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 위해 많이 운전 하셨나요?'하고 물을 때,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아니요. 저는 운전 면허증을 취득한 다음에 운전을 잘하기 위해서 운전을 많이 했어요'. 좋은 성우가 되기 위해 성우 시험을 합격한 이후에도 정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성우가 된다함은 시험을 합격하는 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우가 된 계기

구자형 동문이 성우로 데뷔하게 된 계기는 드라마틱했다.

"실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성우가 되었습니다. 숭실대학교 재학 시절, 학과 공부보다는 동아리 활동인 SSBS(숭실대학교 방송국)가 주()였다고 말할 수 있는데 졸업 때까지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는다든가 하는 졸업 이후의 취업 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어요. 원래는 캐나다 토론토 한인 방송국 쪽으로 취업이 되었지만 당시 걸프전의 영향으로 비자가 너무 늦게 나와 무산되었지요. 한참 뒤, SSBS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자신들이 대신 원서를 넣어줄 테니 학교 앞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토요일에 어디를 가서 시험을 치라고 하더군요. 그것이 바로 성우 시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운전면허로 비유했듯이, 운 좋게 성우가 되었다고 해서 프로가 되었다고 보기는 힘들지요. 학교 방송국 활동으로 기본적인 발성이나 호흡 등은 준수했으나 그 외에는 갖춰진 게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성우에게도 수습 기간에 해당되는 전속 성우의 시간이 있는데 그 때 정말로 힘들게 공부를 했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

구자형 동문은 그간 셀 수 없이 많은 캐릭터의 목소리를 담당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는 '스파이크'였다고 대답했다.

"이십 년 전에 유명했던 <카우보이 비밥>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인 '스파이크'역을 맡았었습니다. 이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첫 째로, 저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가 단순히 아이들만의 전유물로 전락하지 않고 어른들에게도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스파이크가 등장했던 이 작품이 딱 그러한 작품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스파이크를 마치 실사 인물처럼 연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애니메이션은 목소리만 딱 들어도 해당 캐릭터가 선역인지 악역인지를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철저히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져있어 캐릭터가 입체적이지 않고 개성이 없다는 증거지요. 첫 번째 이유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데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이상의 매체에서 악당은 단순히 '나쁜 놈', 그 이상의 특징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흥행몰이 중인 영화, '어벤저스'에 등장하는 '타노스'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한낱 '나쁜 놈'에 지나지 않겠지만 어른들에게서 여러 생각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스파이크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었지만 입체적인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작업 중에 '내 연기다'라는 느낌이 들었고, 어른의 실제 대사에 가깝게 녹음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를 시초로 우라사와 나오키원작, <몬스터>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닥터 덴마'라는 캐릭터의 역을 맡았을 때도 '내 연기'를 할 수 있었지요.



성우로서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예전에 직업 만족도 조사에서 성우가 2위였던 게 기억납니다. 좋게 생각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성우로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고초들이 있거든요. 성우라는 직업은 재미있습니다. 다른 이의 삶을 살고 그 삶을 음성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은 보람 찬 일이며 돈까지 벌 수 있으니 감지덕지입니다. 하지만 ''에 속해있는 직업군인만큼 ''에 위치한 이들이 성우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일들이 간혹 있습니다. 가령, 원고를 당일 날 주면서 준비할 여유조차도 주지 않을 때가 있고, 논의 되지 않았던 다른 역들까지 시킨다든가 할 때도 있지만 ''의 입장에서 단호히 '안 하겠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페이가 계속 들어오지 않아 노심초사 했던 경우도 있었고요. 그럴 때 마음이 참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직업들에도 그러한 고초들이 있겠지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경은 들려지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고 생각해요.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기록하는 가죽이 비쌌고 문맹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말씀은 들려지는 것이었죠. 이 말인 즉 슨, 말씀은 텍스트보다 음성에 더욱 가깝다는 뜻입니다. 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약성서를 녹음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성경 속 문자를 건조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문자에 깃든 의미와 감성을 청자에게 그대로 전달해줄 수 있는, 그런 녹음을 하고 싶습니다."

숭실인들에게 남기고픈 말

마지막으로, 구자형 동문은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특정한 목표 혹은 직업에 가두어 두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끝까지 붙잡고 해내는 과정이나 결실, 물론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큰 줄기를 타고 올라가면서 맞닥뜨리게 될 수많은 기회의 문들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령, 철학을 전공한 제가 '출판사의 편집자나 방송 아나운서를 해야지. 성우는 아니야'하면서 애초부터 성우로의 길을 봉쇄해두었었다면 성우라는 길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겠지요. 하지만 제게 이 일은 즐거운 활동인 동시에 생활을 위한 돈도 벌게 해줍니다. 저는 4학년 때까지 '재미있으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지'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고 비록 그간 힘든 일도 많았지만 성우라는 직업은 그 조건에 잘 충족이 되었지요. 지금은 북텔러로 활동함과 동시에 성우들을 양성하는 스승으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기회의 문들을 쳐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자 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더불어 학생들이 행복을 위해 돈 이외의 가치도 추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려고 하지요. 돈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희생하기도 하고요. 물론 돈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요즘 시대에는 무엇을 하든 돈을 벌기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행복하지 못하다고 답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고요. 행복에 대한 인식이 일률적으로 ''과 연관되기 때문이지요. ‘유발 하라리<호모데우스>에도 나오듯, 예전에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던 삶의 목표가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사는 것', '매일 끼니 거르지 않는 것', '전쟁, 사고 등을 겪어 죽지 않는 것'이었다면 이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된 현대 사회에서는 그 기준이 다른 가치로 전이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중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행복추구라고 하고요. 하지만 행복추구의 충분조건이 꼭 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령, 나와 교류하고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 공간이 비록 초호화 크루즈가 아니더라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많은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소통과 공감의 관계를 하나 둘씩 포기하며 혼자만의 세상에 갇힌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용가치가 있는 인맥만을 중요시할 뿐 진정성 있는 소통과 관계를 형성하려 들지 않아요. 하지만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이들은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함께하는 가운데에서 행복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숭실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구자형 동문은 '공부란 평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책들을 읽고, 서양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가 베테랑 성우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더빙 작업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목소리를 녹음하는 행위로 보지 않고, 그 속에 그의 사상과 철학을 녹아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맡은 캐릭터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배움의 전당, 숭실대학교에서 숭실인들 역시 그를 본받아 배움을 삶 속에서 녹여낼 수 있는 이들이 되기를 기원한다.

인터뷰학생기자단 프레슈 8기 홍주성

* 구자형 동문은 1986년 숭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1992KBS 성우극회에 23기로 입회하였다. 현재 프리랜서이자 북텔러로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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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5.07.16